페이스북 코인 발행이 가지는 의미
지난6월 18일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의 백서가 공개되었다. 비트코인의 탄생 이후 수많은 암호화폐들이 상용화의 관점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세계 22억명의 사용자를 갖고 있는 페이스북이 암호화폐를 발행한다는 소식은 블록체인 업계를 넘어서 기존 금융시장까지도 큰 충격을 준 듯하다. 페이스북 내세우는 여러가지 강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모두가 페이스북의 암호화폐를 주목하는 이유는 발행 주최가 ‘페이스북’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암호화폐 중 가장 오래되었고 널리 알려진 비트코인의 지갑 주소 수는 올해 1월 기준으로 약 1억5300만 개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때, 22억이라는 숫자는 아직은 비주류라고 여겨지는 블록체인 업계에 대한 인식을 단숨에 바꿀만 한 큰 숫자이다. 페이스북뿐 아니라 2억명의 사용자를 갖고 있는 텔레그램, 우리에게 친숙한 카카오톡, 라인 등 대형 플랫폼들이 연달아 코인을 출시하고 있다. 이러한 대형 플랫폼의 진출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수 있다. ‘블록체인은 이제 주류 산업에 편입되는 걸까?’ 그리고 ‘대형 플랫폼의 진출 이전에는 왜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지 못했을까?’ 블록체인 서비스를 직접 체험하고 가까이서 지켜본 사용자의 입장에서 블록체인의 상용화 문제를 간단히 다뤄보고자 한다.
이오스 나이츠를 플레이하기까지

사용자 관점에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부분은 아무래도 사용자 편의성이다. 우리가 기존에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던 웹 서비스 및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비교했을 때 아직까지 암호화폐로 결제를 하거나 블록체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은 다소 복잡하고 어렵다. 크립토 키티를 제외하고 디앱 게임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이오스 나이츠를 통해 살펴보자. 이오스 나이츠는 2018년 8월 출시 이래 이오스 기반 디앱 중 사용자 수 기준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7월 7일 DappRadar기준으로는 전체 게임 디앱 중 최근 24시간 사용자 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오스 나이츠라는 게임을 하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과정은 매우 험난하다.
1. 암호화폐 거래소에 가입을 해서 이오스를 구입한다. 2. 이오스 메인넷 계정을 생성하고 구입한 이오스를 해당 계정으로 전송한다. 3. 이오스 나이츠 게임을 지원하는 이오스 지갑을 설치한다. 4. 게임 실행을 위해 필요한 네트워크 자원을 제공받기 위해 이오스를 스테이킹한다.
경우에 따라 조금씩 과정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며 이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따라가기 쉽지 않다.
반대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 서비스는 매우 직관적이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메신저 친구가 보낸 메시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게임을 시작할 수 있으며 자신도 모르게 결제까지 완료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블록체인 서비스는 아직 상세한 과정을 신경 쓰지 않고도 서비스 사용 및 암호화폐 결제까지 가능한 정도의 사용자 편의가 부족하다. 디앱 게임 중 1위를 차지하더라도 일일 사용자 수는 약 5,000명에 그치고 있다.
10X better?
스타트업 업계에는 ’10x rule’이라는 원칙이 있다.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이자 페이스북, 에어비엔비와 같은 유명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한 피터 틸(Peter Thiel)이 얘기한 성공하는 스타트업 규칙 중 하나인데,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경우 기존 서비스 대비 10배 이상 좋은 서비스여야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글의 검색엔진은 야후의 일방적인 정보제공 서비스보다 10배 이상 좋았기 때문에 웹 2.0시대를 가져왔고, 애플의 아이폰도 기존 피쳐폰 대비 10배 이상 좋은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에 스마트폰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으로 여겨지고 있는 블록체인은 어떨까?



사용자 관점에서 보았을 때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들은 아직 기존 서비스 대비 10배의 가치를 가져다 준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 가능한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요즘 디파이(Defi, Decentralized Finance)라는 이름으로 탈중앙화 금융 시스템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그 중 ‘결제’를 예로 들어보자. 블록체인 결제 서비스가 내세우는 새로운 가치에는 크게 중간 수수료 감소로 인한 할인혜택과 결제가 은행 계좌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큰 혜택이기는 하나 암호화폐 비결제 상품 대비 가격차이가 클 경우 한쪽의 매출이 줄어들 수 밖에 없으므로 가격 할인 폭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며, 한국처럼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로 어디서든 결제서비스를 사용하기 쉬운 국가의 사용자에게는 10배로 다가올지는 의문이다.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결제연구팀의 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대부분(98.9%)이 은행 등 예금취급기관에 결제성예금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전세계 성인의 결제성예금 계좌 보유비율은 50% 수준이며 선진국은 89% 수준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의 경우 은행 서비스로부터 소외되어 암호화폐를 사용하려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서울시가 실시한 제로페이의 경우 이번 1분기 예상 결제 금액의 0.015%수준에 그치며 크게 실패하였다. 제로페이의 가장 큰 강점이 소상공인에게는 결제수수료 혜택을, 소비자에게는 소득공제 혜택을 가져다주는 것이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현존하는 암호화폐 결제 시스템이 내세우고 있는 혜택은 국내 사용자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블록체인 대규모 채택의 촉매제
그렇다면 블록체인 대규모 채택은 의미가 없는 걸까? 아직은 사용자 관점에서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사용하기 힘든 장벽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블록체인 기술이 기존 산업에 적용되었을 때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가치에는 충분히 잠재력이 있다. 그 중에서도 제 3자 없이 안전하게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해외 송금 수요가 높은 동남아시아나 은행 계좌가 없는 국민이 많은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이미 이를 활용한 금융서비스가 10x 나은 서비스로 인식되고 있다.
Defi외에 잠재력이 크다고 여겨지는 또 하나의 분야는 게임이다. 현재 블록체인 게임에는 사용자 유입을 가로막는 요소들이 있지만, 게임 산업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잠재력이 매우 큰 이유 중 하나는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라는 새로운 개념때문이다. 현재 유료 아이템은 잃어버리기 쉽고 거래가 어렵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 아이템의 안전한 보관 및 거래가 용이해지기 때문에 이는 게이머들에게 10x의 가치가 된다. 이처럼 금융 및 게임을 비롯하여 기존 산업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었을 때 사용자가 제공받을 수 있는 새로운 혜택에는 큰 잠재력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 잠재력이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카카오과 같은 대형 플랫폼을 활용한다면 사용자 편의성 측면에서는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크다. 앞서 서울시의 제로페이가 크게 실패하였다고 언급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점은 제로페이 실행으로 전통시장 일일 매출액이 소폭 늘었으며 그 중 44%는 케이뱅크의 케이페이를 통한 결제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을 활용한다면 국내에서도 Defi도 충분히 확장 가능하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머지않아 이오스 나이츠의 개발사와 카카오의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이 합작한 ‘클레이튼 나이츠’라는 게임이 출시될 예정인데, 카카오의 편의성 및 접근성이 더해져 적어도 기존 이오스 나이츠에 대비하여 적어도 한국 사용자의 수는 훨씬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7월 17일, 페이스북은 상원 금융위원회가 여는 청문회에 참석하여 리브라 개발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 기존의 중앙화 된 금융시장 그리고 사회 구조에 반하여 만들어진 것이 블록체인 그리고 암호화폐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대형 플랫폼의 지휘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대형 플랫폼의 진출이 현존하는 블록체인 서비스의 문제점을 대폭 개선하고 블록체인을 주류 산업으로 가져오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